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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ieur Christian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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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월 21일 크리스찬 디올은 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든 부모가 그랬듯이 그의 부모들 역시 크리스찬 디올이 의사나 외교관이 되기를 바랬고 그들의 희망에 따라 평범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러나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이 의사나 외교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학이나 정치관련 책들보다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꽃을 가꾸기 좋아했고 그림과 의상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젊은 날의 그는 여러 친구들과 문학을 즐기고 연극을 즐겼으며 직접 화랑을 경영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그는 빠리 보헤미안의 생활을 만끽했다.

1931년 크리스챤 디올은 부친의 사업실패, 잇따른 화랑의 실패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당시 잡지사에서는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디자이너들의 옷을 보여주어야 했고 따라서 일러스트레이터 들이 필요하였다. 크리스찬 디올은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패션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 디올은 다른 디자이너의 스케치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디자인도 함께 작업을 하였다. 그의 천부적인 재질은 곡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의 디자인을 사기 위한 디자이너들이 늘어났다. 그 중 삐게(Piguet)라는 디자이너가 크리스찬 디올을 전용 디자이너로 채용하게 되었다. 그때,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고 그는 전쟁에 참여 함으로서 삐게의 자리를 놓치고 말았다. 전쟁 후 그는 시골에서 동생과 함께 농장을 가꾸며 살기를 원했지만 세상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그냥 놓아 둘리 없었다. 그는 곧 루시앙 르롱이라는 디자인 하우스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때 이미 그는 40세가 되어있었다.

40의문턱에 들어서 주위를 살펴보니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르롤이라는 디자이너의 그늘 아래 있었다, 그는 드디어 1947년 마르셀 부싹이라는 재력가의 힘을 얻어 크리스찬 디올 꾸띄르 하우스를 열게 되었다.

크리스찬 디올의 첫 컬렉션은 성공적이었다. 전쟁의 상처에서 허덕이고 있는 파리, 여성 평등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패션 역시 짧은 치마와 남성화 되어가고 있는 재킷, 꼭 끼는 허리선 등 지극히 여성스럽고 엘레강스를 강조한 그의 컬렉션은 긴 가뭄 끝에 내린 시원한 소나기와도 같았다. 바로 ‘New Look’이 선보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찬 디올의 이름을 입에 오르내렸고 그의 명성은 곧 태평양을 건어 미국까지도 알려졌다.



John Gall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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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갈리아노는 스페인 항구 도시인 지브롤터에서 영국인 배관공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여섯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돴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화려한 옷차림에 플라멩고 춤을 즐겼던 그는 84년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의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졸업작품 발표회 떄 바이어스 재단 기법을 사용한 탁월한 작품으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듬해에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과감하고 정렬적이며 재기 넘치는 그의 컬렉션에 환호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옷을 구입하지 않았고 이에 갈리아노는 잇단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 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던 갈리아노는 93년 컬렉션을 계기로 성공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95년 말엔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되었다. 그 다음해 지방시의 첫 오뜨 꾸띄르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크리스찬 디올을 거머쥐게 된것이다. 갈리아노의 컬렉션은 과감하며 민족적 정서를 담고 있다. 주로 전설이나 엣날 왕국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는 만큼 신비스런 이야기를 살려내는 힘이 있다. 그리고 크리스찬 디올과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주는 컬렉션을 통해 여성이 갖고 있는 힘을 아름답게 표출해 주고 있다. 존 갈리아노는 “오뜨 꾸띄르(맞춤복)건 프레타 포르테(기성복)건 형식적이고 무거워서는 안된다.현대적인 직물 기술과 마무리 작업 등을 통해 최대한 가벼운 옷으로 낭만적이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이어갈 것”이라 밝히고 있다.

크리스찬 디올과 존 갈리아노. 이 두명의 천재 예술가가 보여주는 디자인 세계는 다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적 집착’만은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여성들은 나의 의도가 그들을 단지 조금 더

아름답게 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챤 디올


제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디올의 모든 제품들은 행복한 삶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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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은 액세서리와 화장품 용기를 수공예로 제작해내고 높은 품질의 텍스춰와 색상, 그리고 향을 선정해 냄에 있어 완벽을 기하기 위한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이와 같은 최상을 추구하는 기준은 부티크의 엄선된 위치선정, 조화로운 머천다이징을 위한 디테일 하나하나에 대한 감각은 물론 고객관리에 대한 매우 세심한 주의까지, 모든 판매의 장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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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감각적인 행복, 그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약속하는 럭셔리.

그 행복은 “Dieu(디유 : ‘이라는 뜻의 프랑스어)“Or” (오르: ‘골드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결합한 디올의 이름처럼 영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을 아우르는 근원적 행복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디올의 가치를 현실로 바꾸고 고객과의 사이에 마법과도 같은 연결고리를 창출해내는 일은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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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시각적 화려함은 세상의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크리스챤 디올

  

디올의 표현 양식을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명확히 설명해 낼 수 있는 특성이 바로 화려한 감각입니다. 

 

존 갈리아노가 연출한 드라마틱한 패션쇼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루함을 날려버리며 내재된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구상되었던 크리스챤 디올의 패션쇼 처럼 타 대상과의 비교 자체를 불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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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최고의 혁신적인 창조물과 실험적인 시도들은 언제나 감동을 주고, 욕망을 불러 일으키며, 궁극에는 기억 속 한곳에 자리합니다

디올은 고객과 만나는 판매의 장에서도 디올의 창조물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창조적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극적 감각을 고양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고객과의 약속을 충실히 수행해 내는 디올의 뷰티 제품들은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들을 경이롭게 하는 놀라운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뉴 룩의 정신은 그 어느때 보다도 생동감 넘치게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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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저는 제가 만드는 드레스가 여성의 실루엣을 살리고 여성의 라인을 따라 고쳐지고 형태를 갖추기를 원했습니다.  허리와 힙의 볼륨을 강조하였고, 가슴 부분에도 볼륨을 주었습니다.”
    크리스챤 디올

 

디올의 여성은 여왕입니다.  그녀는 두 눈이 내뿜는 흡인력, 동작 하나하나, 자신만의 개성은 물론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 자체로 빛을 발산합니다.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으며,

그녀만이 가진 아우라는 영원히 잊혀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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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를 지닌 샤론스톤, 진정한 아름다움의 아이콘인 샤를리즈 테론, 다크한 광채로 빛나는 헤어에서까지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모니카 벨루치여성성을 구현하고 있는 이 모든 여배우들은 디올 뷰티에 영감을 제공합니다.

 

디올의 향수, 메이크업, 그리고 스킨케어는 이와 같은 당당한 여성성을 구현하는 데에 기여합니다.

 

디올의 향수는 여성이 지니는 개성적 아름다움의 모든 면모를 표현합니다.

 

미스 디올, 쁘아종, 그리고 쟈도르는 불 같은 열정을 가진 힘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는 여성을 위한 꾸뛰르 향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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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메이크업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외모를 다양하게 연출하고 자신의 모습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본래의 모습과 같지 않은 듯 하나 결코 다르지 않은모습으로 조명하도록 하는 여성적인 기교를 고양시킬 수 있도록 해줍니다.

 

디올 스킨케어는 여성에게 매일매일 자신의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느끼는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인생을 당당하게 만들어 줍니다.

 

꾸뛰르에서 뷰티에 이르기까지, 디올의 모든 훌륭한 창조물은 여성의 매력을 찬양합니다.

 

디올의 아름다움은 모든 여성에게 잠재해있는 최상의 것을 드러내는 당당한 아름다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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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Creative Energy

창조적 에너지

 

럭셔리는 모든 다양한 양상의 즉흥적 상상력을 수용합니다.”

크리스챤 디올


 

뉴룩의 탄생이후 디올이라는 이름은 모든 관습과 시간의 제한성을 뛰어넘는 창조적 자유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디올은 그 언제도 한가지 스타일에만 구속되었던 적이 없습니다.  디올의 영감의 근원은 현재 그 어느때 보다도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디올은 세상 모든것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디올의 시각에서 그 모든 것은 고귀하게 재 창조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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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음악, 그림, 혹은 소소한 단추 하나에서도 창조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존 갈리아노

 

 

디올 향수는 브랜드의 고귀한 고전적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합니다.

 

디올 메이크업은 어떠한 제약도 없이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의 표현이 가능하도록 텍스춰, 컬러, 그리고 빛의 효과를 다룰 수 있는 탁월한 기교를 연출합니다.

 

디올 스킨케어는 과학의 전문성과 아름다움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소멸시키는 혁신을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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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디올 화장품은 상상의 신세계와 새로운 지평을 열고,
미지의 향(
)의 영역을 개척합니다.

 

최상을 지향한다는 단 한가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이 개척의 영역은 실로 무한합니다.

 

오늘날 창조적 에너지는 그 어느때 보다도 필요합니다.

 

잠재해 있는 창조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창조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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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뉴룩탄생 60주년을 맞는 오늘날에도 디올의 풍부한 상상력, 색감과 패턴의 다양성, 그리고 비범한 혁신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원천입니다.

 

디올은 영원히 매혹의 마력을 지닌 브랜드로 남을 것입니다. 

 

패션에서 뷰티에 이르기까지, 그 매혹은 디올의 모든 창조물에 영원히 풀리지 않는 마법을 걸어놓고 있습니다.

 

그 매혹의 근원은 이제껏 디올을 정진하게 하였으며 현재와 미래의 우리 모두가 최고조로 고양시켜야 하는 바로 그 가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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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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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열린 마인드를 가진 세계인

 

지칠줄 모르는 노력가, 그리고 완벽주의자.

 

저는 수백개의 스케치를 10일안에 완성합니다.”

어떠한 타협도 스스로 허용하지 않았을 때에만
저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챤 디올의 글에서 발췌*



화장품 브랜드를 최초로 세계화한 통찰력 있는 사업가.

 

사업을 시작한지 단 7년만에 디올의 제품을 전 세계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재능을 지닌 인물

 

디올은 그가 눈으로 보는 거의 모든것을 창조해 냅니다.  그는 건축가처럼 관찰하고, 도시 계획자처럼 반응하며, 사회학자처럼 사회상을 반영해 내며, 사업가처럼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마리 프랑스 포크나가 쓴 크리스챤 디올의 전기에서 발췌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인생의 모든 디테일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고,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조차도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인물.

 

상황에 대처하는 본능이 뛰어난 인물.

 

아마도 크리스챤 디올은 유명세를 누리는 꿈은 꾼적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큰 명성을 얻게 되었을 때, 그 명성을 그보다 더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 마리-프랑크 포크나가 쓴 크리스챤 디올의 전기에서 발췌---

 

 

하나의 스타일에만 구속받지 않는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은 자신이 받은 영감의 근원을 극단까지 파고드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뉴룩의 경향을 넘어서서, 여성의 몸에 대해 끊임없이 신선한 실루엣을 제안함으로써 자신이 선보이는 패션이 당대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더 이상 패셔너블해 보이지 않을만큼의 실험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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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크리스챤 디올


파워풀한 가치를 지닌 비범한 개성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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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디올은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명이었음은 물론, 당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다섯 인물 중 하나로 인정받았습니다.  국제적인 수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선택이길 바랬던 크리스챤 디올은 전세계를 통해 자신이 정의한 우아함의 기준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사춘기 시절, 한 예언가는 그의 눈부신 운명을 이미 예언하였습니다.  당신은 힘든 시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당신을 도울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Christian Dior


Brand Concept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과 과학 그리고 예술의 조화,

이것이 동시대의 이미지를 포착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정서를 전달하며, 전통과 현대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크리스챤 디올의 길입니다. 

여성을 가장 여성답게 표현하는 세계적인 명품의 대명사 "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Dior의 혁신적인 최초 아이템 !!!!

루즈 아 레브르 립스틱 &  최초의 보습 기능 립스틱

1955년, 크리스챤 디올은 최초의 메이크업 제품인 립스틱을 발표했다. 우아한 포장속에 담긴 8가지 오렌지색 계열 립스틱은 크리스챤 디올 패션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인에게 크리스챤 디올의 아름다움을 보급한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5년, 크리스챤 디올은 립스틱에 대한 연구 개발을 통해 최초의 현대적인 립스틱인 울트라 디올을 소개했다. 울트라 디올은 색상은 물론 입술 보호 기능을 가지고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1965년 크리스챤 디올은 메이크업 분야 예술가와 과학자 그리고 연구센타를 중심으로 메이크업 창조 센터를 설립했다.

1968년 크리스챤 디올은 오렌지 색조를 띤 붉은색 립스틱인 루즈펄가(ROUGE FULGAR)를 발표했다. 또한 메니큐어와 립스틱의 색상을 맞추어 조화와 단아함을 추구하는 새로운 메이크업 개념이 처음 성립된 것도 1968년이다.

최초의 안티에이징 성분 개발 및 제품 출시

1986년에는 안티-에이징의 시초가 되었던 리포좀의 발견을 통해  캡춰 (Capture) 라인을 개발하여 모든 여성들의 관심사였던 노화를 수면위로 끌어내었습니다. 이후 주름, 퍼밍 등 다양한 노화의 징후를 해결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 안티에이징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안티 셀룰라이트 제품

지난 93년(유럽 런칭) 디올은 세계적으로 1천만병이상이 팔린 몸매보정용 화장품 "디올 스벨트"를 개발, 세계여성들의 아름다운 몸매가꾸기에 큰 기여를 하며 몸매 가꾸기에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했다. 런칭 당시 전 세계에의 매장에서는 줄을 서서 제품을 구매하는 현상까지 생겼다는데.
이 제품은 안티-셀룰라이트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판매업자들은 그러한 제품의 잠재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디올 스벨트”가 런칭했을 때 일본에서는 이틀만에 제품이 품절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이 시장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1993년 디올 스벨트가 처음 선보였을 때 그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충격 이상의것을 주었습니다. 셀룰라이트라는 새로운 단어가 여자들 사이에 떠돌기 시작했고 바르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화장품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여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마침내 한국에 디올 스벨트가 소개되었을 때 한국 여성들의 반응은 열광 그 자체였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디올 스벨트를 체험해보기 위해 디올 매장에 모여들었고 심지어 한사람에게 팔 수 았는 수량까지 정해두어야 했습니다. 바르기만 해도 날씬해지는 디올 스벨트의 히트는 수많은 바디 제품들의 러시를 이끌었습니다.

디올스벨트의 테크놀로지?
우리의 피부 깊숙한 곳, 지방세포 안에는 지방질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는 조절 효소가 있으며, 이 효소의 기능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cAMP 분가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 메카니즘은 ‘포스포디에스테라제’라고 하는 파괴효소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음으로써 깨어지기 쉬운 구조가 되어버립니다. 즉, 지방질을 제거하는 활동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cAMP’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할 때 우리의 세포가 지방질을 제거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그 결과 세포가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팽창된 세포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피부조직내에 수분이 고이고, 독소들이 축적됩니다. 이상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 바로 셀룰라이트입니다.  디올 스벨트는 지방제거의 열쇠가 되는 자연 ‘cAMP’와 거의 동일하게 기능을 하도록 개발한  성분‘PURE cAMP’로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또한 콜라콩에서 카페인을 제거하고 추출한 성분 “콜라(Cola)”가 포스포디에스트라제의 활동을 억제합니다.

2002년 더욱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이미지와 향상된 효능의 “비키니”라인으로 선보이며 원인에 따른 다양한 처방의 제품라인을 출시했습니다. 축적된 셀룰라이트를 제거하고 방지하는 제품, 과도한 수분을 배출하지 못해서 생기는 출렁거리는 물살을 제거하는 제품, 그리고 피부 노화로 인한 처짐을 방지하는 제품으로 세분화되었으며 2003년에는 여성들의 가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트렌드를 반영해 가슴을 관리하는 비키니 탑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디올은 안티 셀룰라이트 제품의 대표주자로 “디올 스벨트”, “비키니”  이후 현재는 “플라스티시티”로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셀룰라이트만을 없애주는 것에서 발전하여 완벽한 체형 교정과 함께 지방세포의 생성을 막고 탄력을 강화하여 완벽한 바디로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제품입니다.

성형 수술(플라스틱 서져리 Plastic Surgery)에서 따온 제품명, 플라스티시티(Plasticity)에서 짐작할 수있듯이 플라스티시티는 지방 흡입 술의 테크닉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혁신적인 바디 슬리밍 제품입니다.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동시에 지방흡입을 하듯 성숙한 지방 세포의 전단계인 전 지방세포 (pre-adipocyte)의 제거를 촉진해 날씬하고 매끄러운 바디라인을 가꿀 수 있게해주는데,외과의사의 캐뉼라 (환자에게 투약하기 위해 꼽는 금속관)처럼 정확한 플라스티시티는 피부세포를 목표로 하여 셀룰라이트를 억제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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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르 향수

1999년 디올의 15번째 여성 향수로 탄생해 올해로 탄생 8년째를 맞이하는 쟈도르는 처음 선보인 순간부터 유럽, 아시아, 캐나다,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1999년 향수마켓쉐어 1위를 차지합니다. 또한 그해 최고의 향수에 수여되는 “Fifi”상을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수상하는데 이어 2001년 미국에서도 베스트 뉴 프레그런스 상을 수상하며 쟈도르는 최초의 “그랜드 슬램”향수가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발매 첫해인 1999년, 카르멘 카스의 매혹적인 TV광고 와 함께 큰 인기를 모으며 백화점 향수 마켓쉐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장 여성적이고 우아한 향과 독특한 제품명, 이국적인 디자인의 향수병, 그리고 모델 카르멘 카스의 신비한 이미지로 쟈도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전세계적인 큰 성공을 거둔 디올의 대표적인 향수입니다.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완벽과 조화를 추구하는 또 하나의 문화사, 크리스챤 디올의 역사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과 과학 그리고 예술의 조화, 이것이 동시대의 이미지를 포착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정서를 전달하며, 전통과 현대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크리스챤 디올의 길입니다." - 모리스 로저 -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크리스찬 디올은 패션, 향수, 화장품 등 아름다움과 조화를 추구하는 현대인을 위한 또 하나의 신화이다.

1946년 10월 8일, 루시앙 르롱 출신의 디자이너인 크리스챤 디올과 저명한 실업가인 마르셀 부삭이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합작으로 설립한 고급의상실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에서 시작하여 패션, 향수, 화장품, 악세서리까지 그 상상력과 창조의 영역을 확대해왔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얻게된 크리스챤 디올은 다음해인 1947년, 크리스챤 디올 향수회사를 설립하여 새로운 타입의 여성용 향수인 ‘미스디올(Miss Dior)’을 개발했다. 200개 한정품으로 시판된 미스 디올은 기존의 부인용 향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여성의 자기 표현으로서의 향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개척했다.

1955년 립스틱을 필두로 하여 메이크업 부문에 진출하기 시작한 크리스챤 디올은 이어 1956년 미스 디올에 이은 또하나의 여성용 향수 ‘디오리씨모(Diorissimo)’를 발표했으며 1966년에는 남성용 향수  ‘오 쏘바쥬(Eau Sauvage)’를 완성시켰다.

또한 크리스챤 디올은 ‘화살’ ‘매력’ ‘자유분방’ ‘유선’등의 제목으로 매년 다양한  패션, 향수, 화장품을 포괄하여 새로운 유행 색상과 주제를 정하는 ‘룩(Look)’을 제시하면서 세계의 유행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1968년 모에 헤네시 지주 회사에 편입된 크리스챤 디올은 제품 개발과 다양화에 박차를 가해 다음해에는 최초의 크리스챤 디올 화장품을 시판하는가 하면 1973년에는 최초의 스킨케어 화장품인 이드라 디올(Hydra Dior)을 개시하기도 하였다.

1980년, 새로운 스킨케어 화장품 라인인 레쥘땅뜨(Resultante)를 개시했으며 1985년에는 세계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여성용 향수 쁘와종(Poison)을 시판했다. 계속해서 크리스챤 디올 향수회사는 1986 여성용 스킨케어 화장품인 캡춰 (Capture) 라인을 개발했으며, 다음해에는 ‘블루&골드”라인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색상의 조화로 크리스챤 디올의 표상을 와선시켰다.

앞서 여성용 향수 쁘와종(Poison)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판매 기록을 세운바 있는 크리스챤 디올 향수 회사의 모리스 로져 회장은 1988년 다시 남성용 향수 화렌하이트(Fahrenheit)를 개발했으며 1999년에는 디올의 대표적인 야심작 ‘쟈도르(j’adore)’를 발매하여 지금까지 꾸준한 베스트셀링 제품이 되고 있다. 스킨케어 부분에서는 안티에이징 대표라인 “캡춰 시리즈”와 화이트닝 라인 “디올 스노우”를  히트시키며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이미지의 스킨케어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혔으며,  2000년 3월에는 ‘프레스티지(Prestige)’라는 최고급 스킨케어 라인을 출시하며, 명품 스킨케어 브랜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메이크업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전폭적으로 사랑받는 파운데이션 라인 “디올 스킨”과  향수와  메이크업 라인” 디올 어딕트”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패셔너블한 이미지와 과학이 조화된 화장품 브랜드로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1987년 크리스챤 디올사는 헤네시 모에사와 루이 뷔통사가 결합하여 LVMH 그룹을 설립함에 따라 LVMH에 속하게 되었다.

1984년, 외국 화장품 회사로서는 최초로 국내 시장에 진출한 바 있는 크리스챤 디올은 10년 후인 1994년, 한국 지사인 크리스챤 디올 코리아의 출범과 함께 현재까지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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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은 1980년부터 크리스챤 디올의 이미지와 메이크업 부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해오고 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사진작가(그는 디올의 몇몇 광고 캠페인을 만들어 냈다) 등 다방면에 걸쳐재능을  소유하고 있는, 한 순간이라도 정지해 있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 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전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보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람이죠... 나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녔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여행 도중 부딪히게 되는 모든 전원 풍경들, 모든 색채들과 얼굴들을 눈여겨 봅니다. 그리고는 무의식적으로 내 머리속에서 이 모든 감각들을 뭉뚱그려 새로이 창조해 내지요. 내 직업의 영감은 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색채들은 음악에서의 음표들과 같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색채들을 혼자 흥얼거리지요...”

베트남 출신인 티엔은 1980년 1월에 크리스챤 디올에 합류하기 전에는 , 티엔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레브론사의 스튜디오 메이컵 아티스트로 일해왔다 하루 온종일을 가르니에 궁의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뒤편에서 <라보엠>,<나비부인>,<엘렉트라>등의 오페라와 <백조의 호수>로부터 캐롤라인 칼슨의 최신 작품들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발레 공연 출연진들의 얼굴을 풍부한 색채로 디자인하며 보내야 하는 자신을 혹사하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는 “ 나의 손가락들, 나의 손들, 그리고 나의 예술이 빛을 보게 된 것은 바로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뒷편에서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그의 최근 메이크업 작품들, 특히 이브닝 메이크업에서 우리는 극적인 효과를 주는 메이크업 터치를 발견하게 된다. “밤은 신비로운 시간입니다. 모든 여성들이 그녀만이 지니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무대배경이지요” 라고 티엔은 말하고 있다.

1980년 크리스챤 디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시작한 티엔은 보그, 엘르등 패션 잡지사의 유명 사진작가들과 작업을 통해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특히 메이크업과 조명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그의 관심과 노력으로 인해 현재 그는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의 광고 비쥬얼 및 색조 개발에 깊은 관여를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회사의 이미지를 유지, 개선하는데 책임을 지고 있다.

그의 동양적인 배경은 특히 디올이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하는데 기여를 했으며 특히 장업계  최초로 패션 트랜드와 어울리는 “4가지 룩(봄, 여름, 가을, 겨울 메이크업 트랜드)”를  소개하였다.   
또한 존 갈리아노와 함께 파리 컬렉션쇼에 메이크업 이미지와 컨셉 개발에도 깊은 관여를 하고 있으며 크리스챤 디올의 메이크업 제품 개발에도 참여를 하고 있다.

비록 몇몇 작은 부분들은 시간의 변화를 따르고 있지만 티엔은 그의 메이크업에 있어서 기본적인 몇개의 가치들은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나는 빛에 매우 민감합니다.   나의 색들은 자연의 색들입니다 : 스카이 블루(Sky Blue), 미드나잇 블랙(Midnight Black), 그리고 문 화이트(Moon White)가 그들이지요. 메이크업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깨우고 거기에 빛을 더해 주어야지 절대로 인공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마치 아무런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맨 피부 같아야 하지요” 티엔은 또한 텍스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메이크업을 함에 있어서 ‘실크의 뛰어난 투명감, 담갈색 코튼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린넨의 촉촉함’등을 재현하려 노력한다고 말해했다.

티엔에게 있어 인생과 아름다움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이 여성의 아름다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합니다. 보다 성숙해지고, 더욱 부드러워지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그 여성의 인품이 됩니다.....” 메이크업이 그 여성의 인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패트리스 앙드레(Patrice André)

 “코스메틱 제품은 뛰어난 효능과 바르는 즐거움을 반드시 동시에 충족시켜야 합니다.
물론 꿈와 야망의 도구인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 제품에 사용된 재료의 산지와 추출 및 처리 방법은 향수 만들 때 사용되는 에센셜 오일과 비견될 만합니다. 이와 꼭 같은 접근 방법을 스킨 케어 포뮬라에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성들에게 코스메틱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디올이 추구하는 가치는, 가령 성실하게 작업하고 자연과 동화하는 방식으로 환경 친화적이고 윤리적으로 합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식물 분자를 활용하는 등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바로 디올 연구소에서 가장 중시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트리스 앙드레는 지난 1979년 3월 디올 퍼퓸 & 코스메틱에 합류한 이래로 다음과 같이 다양한 능력 발휘를 해 오고 있습니다.
- 캡쳐 시리즈를 위한 리포좀 테크놀로지 구축
- 네일 에나멜을 위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개발
- 1986년 이래로 “자연 성분” 연구소의 설립과 운영
 
LVMH 프래그런스 및 코스메틱 연구소를 처음 설립할 당시 패트리스 앙드레는 바이올로지 연구소를 지향했습니다. 이후 재료, 바이올로지와 코스메틱 분야를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재료 물질을 개발해서 바이올로지 활동과 이미지 측면에서의 효능을 기대하는 한편 환경과 자연종에 대해 점증하는 관심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세계 각국의 토종식물학, 식물화학, 바이올로지 분야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디올 연구소 자체적으로도 생물학적 선별과정, 식물화학, 추출학 분야의 전문성을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어떠한 식물성 혹은 생물기술학적 재료 물질도 코스메틱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활성 재료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패트리스 앙드레는 20 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이 공동 연구로 들어가 발표된 과학 및 기술적 논문의 수는 무수히 많습니다. 패트리스 앙드레가 개발한 디올 스킨 케어의 활성 재료에는 니포피아 넥타르(프레스티지), 머린 소스 워터(아이오드), 오라포사이드(노에이지), 에델바이스(디올스노우), 론고자(캡쳐 토달르)를 비롯해서 오르 드 비 (Or de Vie) 시리즈를 이한 새로운 재료 등이 있습니다.

마다카스카르로 홍보 여행을 떠날 수 있느냐고 패트리스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우리 디올이 토종식물 연구에 대해서 더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우리 제품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를 알리는 일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디올  코스메틱은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예외없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깊이 있고 정확한 연구와 측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제품에 특별한 효능을 부여하는 추출물이나 분자 성분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꼭 필요한 일이죠.  이를 위해서는 피부를 통제하는 생물학적 기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

패트리스와 메이미

패트리스 앙드레는 지난 1992년 마다카스카르를 살펴 보기 위해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마다카스카르는 정말로 매력적인 곳입니다. 저는 이 매력적인 곳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해, 실제로 접하게 되니 기대 이상이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읽어 왔던 책에서 접하던 내용과 전혀 달랐으니까요. 마다카스카르는 매력과 근심을 동시에 안겨 주는 곳이었습니다. 필적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풍부한 자연 환경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로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곳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죠. 거기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언제나 기꺼이 도와주려는 싹싹함으로 무장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발전의 방향이 잘못되어서 자연 환경의 파괴가 눈에 보이고 있어서 걱정을 하게 되는 곳입니다. 앞으로 이 곳이 정상적인 발전 경로를 밟아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의 원조가 꼭 필요합니다.

처음 마다카스카스를 찾아 갔을 때, 라자피만딤비(Razafimandimby) 박사와 친분을 맺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박사를 메이미라고 불렀죠. 박사와 나는 곧 친하게 어울렸습니다. 우리는 마다카스카르가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큰 공감대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메이미는 식물학자면서 토종식물학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식물과 인류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뜻이죠. 메이미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식물에 대해서는 주로 삼림전문가인 아버지에게서 배웠답니다. 또 자신들의 비전을 기꺼이 전수해 주는 다른 많은 치료전문가들이 있었고요. 우리는 서로 마다카스카르의 식물에 대해서 각종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우리 사이의 이러한 긴밀한 관계 덕에 중요한 발견이 성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 제품화에 성공한 첫째가 론고자입니다.

매니와 나는 이 특별한 식물의 효능을 제품에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도 박사와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많습니다. 앞으로 수년 내에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바입니다.”

패트리스는 마다카스카르의 식물을 연구하는 데 많은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코스메틱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이들 식물 성분의 최대 효능을 위한 최상의 방법을 발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패트리스의 작업은 디올이 지난 20년 이상 채택해 오고 있는 토종 식물학 개발 전략의 일환입니다. 디올의 이러한 전략은 새로운 활성 재료를 찾아 내기 위한 최상의 접근 방법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디올의 목표는 토종 식물학 네트워크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서 디올이 찾아내고자 하는 식물을 제대로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이들 식물로부터 추출한 성분은 연구소의 다양한 생물학적 실험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해당 특질을 지닌 부위가 정확하게 추적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식물은 독특하고도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일관성을 갖고 인내심 있게 장기간의 연구를 거쳐야 합니다.  특정 식물이 선별된 후에는, 이 식물을 재배하고 코스메틱으로 바꾸어 내는 과정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해당 식물이 서식하는 곳의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고려가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를 두고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Posted by 크리스챤 디올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을 추구하는 디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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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패션을 대표하는 살아있는 역사 크리스챤 디올은 패션, 향수, 화장품 등 아름다움과 조화를 추구하는 현대인을 위한 또 하나의 신화입니다.

1955년 립스틱을 필두로  코스메틱  메이크업 부문에 진출하기 시작한 크리스챤 디올은 매년 다양한  패션, 향수